
순교자의 영광이 우리를 비춥니다. 찬미 예수님! 이번에 소개해 드릴 초는 김선덕 마리아 작가님의 작품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생애입니다. 이번 작품은 2021년 1월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특별기획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2021년 11월 청주 모충동성당의 '김대건,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특별 순회전' 2022년 7월 기억과 희망(명동성당 지하 Gallery 1898)에서 전시했던 작품입니다. 김선덕 마리아 작가님의 대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생애와 그분의 정신, 기품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전체 초의 배경이 되는 김대건 신부님의 조선 시대의 복장과 빨간 영대와 옷매무새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하느님과 교우들을 향한 올곧고 굳건한 정신을 잘 반영합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천주님을 섬기기를 원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천주님의 사랑을 전하기를 원하신 그분의 뜻이 순교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뒤따름으로 빨간 영대와 중앙 대초의 십자가를 움켜진 그분의 손에 표현되었습니다. 중앙 대초의 문구 "사랑을 잊지말고 서로 참아 돌보시오"라는 옥중 편지의 글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양냄새'나는 목자의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저희도 정말 그리스도의 몸이자 지체로서 각자 서로 아껴주고 참아 주며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리고 끊임없이 그분의 권고를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초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초의 순서는 화면의 왼쪽부터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생애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왼쪽 첫 번째 초를 설명하겠습니다. 김대건은 1822년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15세 때(현재 중학교 2학년) 파리 외방 전교회 모방(Maubant) 신부가 유방제 신부 편에 마카오로 보내집니다. 이에 김대건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사제로 부름받아 고향을 떠나 신학교를 가기 위해 떠나습니다. 이 떠남의 장면을 첫 초는 표현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탄생하신 솔뫼 성지는 한국 교회의 초석과 같이 되었고, 대전 교구에서 사제서품이 거행되기도 합니다. 왼쪽 두 번재 초는 김대건 신부님이 혹한과 무더위, 온갖 감시와 위험 가운데 천주께 의탁하고 신학교를 가기 위해 만주, 중국, 내몽골을 거쳐 8개월에 걸쳐 마카오로 가는 여정을 표현했습니다. 김대건은 이곳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철학,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김대건은 조선에 귀국하고자 매스트르 신부와 함께 1842년 조선 원정을 계획 중이 프랑스 함대에 승선하였으나 중국이 영국과 남경조약을 맺어져, 조선 귀국이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김대건은 홀로 육로를 통하여 조선 입국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실패했고 그 사이조선 교회에서 보낸 밀사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박해로 인하여 조선에 있던 유일한 성직자들의 순교와 아버지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후 1844년 12월에 김대건은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1일 압록강을 건너 보름 뒤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김대건 부제는 1845년 4월 현석문 외 11명의 교우와 외교인을 데리고 사제를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인천 제물포를 출발하여 15일간 바다 가운데에서 풍당에 시달리며 황해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1845년에 중국 상하이 금가항 성당에서 신품 성사를 받아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초를 설명하겠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순교한 앵베르 주교의 후임으로 제3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페레올 주교와 함께 1845년 8월 31일 상하이에서 라파엘 호를 타고 제주도 해안에 표착하였다가 10월 12일에 상해를 떠난지 40일 만에 충청남도 강경 황산포에 도착하였습니다. 네 번째 초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조선 땅에 도착하여 드린 미사를 표현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의 명을 받아 만주에 남아 있는 최양업 부제와 매스트르 신부를 입국시키기 위해 출발하기 전에 1846년 4월 13일에 마지막으로 은이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5월 14일 위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서울 마포를 떠나 황해도 앞바다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어부들에게 편지와 지도를 건네고 돌아오다 6월 5일 타고 온 배를 징발하려는 관헌과 순위도에서 언쟁을 하다 체포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초에서 이와 같이 체포된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생활을 표현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등산에 해주 감영으로 압송되어 1846년 6월 21일 서울 포도청으로 이성되었는데, 이때 40여 차례 이상에 걸쳐 문초를 받는 취조를 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스승 신부들과 페레올 주교 에게 서한들과 조선 교우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회유문을 작성했습니다. 이 초에서는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인사말로 시작되는 "교우들 보시오"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옥중에서도 양들을 염려하는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여섯 번째 초는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묘를 표현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9월 16일 오전에 서울 한강 모래발 형장인 새남터로 끌려나갔습니다. 어영대장이 사형집행문을 읽자 김대건 신부님은 "나는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천주교를 신봉하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셨습니다. 형리들은 김대건 신부의 옷을 벗기고, 화살로 두 귀를 뚫어 매달고, 얼굴에 물을 끼얹고 회칠하였 습니다. 그리고 작대기를 겨드랑이에 끼워 구경꾼 앞에 세 바퀴 돌게하였습니다. 마침내 머리채를 잡아 묵어 기둥에 매고 12명의 망나니들이 빙글빙글 돌며 전쟁놀이 춤을 추며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몸을 칼로 베다가 8번째 칼날에 목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첫 사제이자 착한 목자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순교로서 주님을 따르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김선덕 마리아 작가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생애를 깊이 묵상하며 이를 초에 표현하셨습니다. 작품 가격은 대초는 50만원이며, 중초는 각 25만원입니다. 따라서 작품 전체를 구매하시면 200만원입니다. 하지만 구매는 원하시는 작품을 지정해서 구매하실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저희 아래 베타니아 번호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042-226-8185 010-8924-8184 작품은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을 하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문을 하면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생애 작품의 경우 한 달에서 두 달 정도가 걸릴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또한 사진은 아무런 보정을 하지 않고 사진 찍은 그대로 올려드렸으나 사진과 실물이 조금 다를 수 있음도 미리 알려드립니다. 저희 밀레마니문화영성센터는 "성미술은 거룩한 봉사에 요청된 예술이다"(「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참조)
의 뜻을 받들어 성미술이 전례에 보다 잘 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례조각초 연구소는 복음을 묵상하며 삶을 성찰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의미를 밝히는데 봉사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전례초조각 연구소는 밀레마니문화영성센터에서 교육과 전시회를 통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례조각초 연구는 교육과 전시회 그리고 밀레마니문화영성센테 베타니아 성물방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이웃 사랑의 실천의 일환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장학금 및 물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대전네거리에 위치한 밀레마니문화영성센터에서 김선덕 마리아 작가님이 전례초조각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수강생들이 배워서 각자 본당의 전례를 풍성하게 하는데 봉사해 왔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주저하지 말고 042-226-8185로 연락주시면 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작가 약력소개》
김선덕 마리아 (Kim seon Deok)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졸업 2019.4 재천호 성지 특별전시 조각초전 2019.11 캄보디아 하비에르 예수회학교를 위한 조각초전(명동성당 지하 Galley 1898) 2020.10 전례초 조각전 (대전밀레마니 문화영성센터) 2021.10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특별 기획전(대전 밀레마니 문화영성 센터) 2021.11. 청주 모충동성당 초대전 2022.7 기억과 희망 (명동성당 지하 Galley 1898) 현재 밀레마니문화영성센터 전례조각초 연구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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